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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Umberto
댓글 0건 조회 19회 작성일 24-10-16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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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부산고구려$ 중 여행하기 가장 좋은 10월 귀한 여행을 다녀왔다. 남편 고등학교(부산고등학교, 현 개성고등하교) 졸업 50주년을 기념하여 친구들과 부부동반으로 한 여행이었기에 더욱 특별했다. 난 전주가 고향이고 전주에서 부여가 그닥 멀지 않은데도 한번도 백제의 옛 도읍지인 공주와 부여를 여행할 기회가 없었는데 이번에 부여를 여행 할 기회가 되어서 부산고구려$ 참 좋았다. 백제의 첫번째 도읍지는 한성이었고, 두번째는 웅진(공주), 마지막으로 사비, 지금의 부여 인근이다. 백제는 700년 동안 통치했던 나라로 삼국(고구려 백제, 신라)중 가장 문화가 발달하였고, 일본에 까지 각종 문화를 수출하였다고 하니 지금의 한류가 이 때부터 시작되지 않나 싶다. 그러나 안따깝게도 백제의 찬란했던 문화재는 남아 있는 부산고구려$ 것이 많지 않다고 한다. 그 첫번째 이유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 하면서 백제 문화를 거의 몰살하고 부정했기 때문이고, 두번째 이유가 백제의 무덤은 부부 합장묘로 부부 중 한명이 먼저 죽으면 무덤을 만드는데 나중에 죽은 사람을 합장하기 위하여 묘 앞에 문을 만들었기 때문에 백제 시대에 묘는 거의 부산고구려$ 도굴 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왕이 집무를 보았던 천정전이다. 백제 시대는 건축 기술이 발달하여 700년 이후에 조선 궁궐의 수준과 거의 다르지 않다고 한다. 특히 다른 것 하나는 저 지붕 오른쪽 끝과,왼쪽 끝에 있는 칩미라는 독수리의 꼬리 모양의 장식품. 왕궁과 사찰에만 이 칩미를 장식했자고 한다.이 부산고구려$ 왕궁은 전문가들의 철저한 고증을 거쳐 지었다고 한다.임금님이 다니던 용문양의 바닥과 대신들이 다니던 무늬없는 바닥. 난간과 계단의 높이가 같은 것이 다른 시대 왕궁과 차별화 된다.왕실 전용 사찰인 '능사', 지금도 스님이 거주하신다고 함, 저 탑 꼭대기에 있는 뾰죽한 금빛 장식품은 순금으로 만들었다고 한다.​능사의 설계도와 능사 안에 부산고구려$ 있는 목불귀족과 평민의 마을계백장군의 집과 일반인의 집사비성을 수호하기하기 위한 성산성위에 있는 반월루와 산성에서 바라본 부여 시가지삼천궁녀가 몸을 던졌다는 낙화암과 백마강. 이야기로만 듣던 역사의 현장을 드디어 내 두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인간의 흥망성쇠를 생각해봄, 온 것은 가고 간 것은 오고, 흥하면 망하고, 망하면 흥하고, 부산고구려$ 성하면 쇠하고, 쇠하면 성하고, 이것이 천고에 불변하는 진리겠지.여러가지 창건설을 가지고 있는 고란사. 낙화암과 고란사 얘기는 항상 붙어다닌다.낙화암에 핀 때 아닌 벚꽃궁의 남쪽에 있는 연못이란 뜻을 가진 '남궁지'남궁지 정자에서 한 동문의 자작시 낭송선화공주와 마동왕자의 사랑이야기특이하게 생긴 연꽃부여 문화의 꽃, 정림사지 5층 석탑, 백제의 석공이 신라의 부산고구려$ 다보탑, 석가탑을 축조했을 만큼 백제의 석공들의 기술이 뛰어났다 한다.너무나 잘생기고 아름다운 탑이다. ​백제의 문화는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 스럽지 않다'고 하는데내가 잠깐 만나본 백제인들 또한 참으로 품격있고, 문화와 예술을 사랑했던 사람들인 것 같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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