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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샘 수업자료] 특수학급 중학교 영어 - 파벳 음가 카드/ 영단어 인출카드 / 자음 + O/ 수업자료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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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ELLO
댓글 0건 조회 42회 작성일 24-09-06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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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t 다파벳 Mai, Luangphrabang, Laos​베산타라 자타카(Vessantara Jātaka)는 상좌부 불교(上座部佛教, Theravada Buddhism)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자타카(Jātaka) 중 하나로, 고타마 붓다의 전생(Gautama Buddha) 중 하나인 매우 인정 많고 관대한 베산타라 왕자가 자신의 아이들을 포함하여 소유한 모든 것을 나누어줌으로써 완벽한 관대함의 미덕을 보여주는 이야기로, 마하 자티(Maha Jati, 위대한 탄생) 이야기로도 알려져 있으며, 태국, 라오스, 미얀마, 스리랑카, 캄보디아에서 매년 축제로 열린다.Vessantara Jataka, Temple Hanging, Singapore 이야기는 아시아 지역 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는데, 티베트에서는 지나푸트라 아르타시티 수트라(Jīnaputra Arthasiddhi Sūtra)와 왕자 아르타시디(Arthasiddhi)로 알려져 있고, 중국에서는 서진(西秦) 때 성견(聖堅)이 388년에서 409년 사이에 하남(河南)에서 1권으로 번역한 태자수대나경(太子須大拏經, Taizi Xudanuo Jing, Jinaputrarthasidda sutra)로 전해지고, 베산타라는 수대나 태자(須大拏太子) 로 알려져 있다. 일본에서는 슈다이나-타이시(Shudaina-taishi)로 알려져 있다. 기적을 일으켜 공중에 나타난 붓다, 상단에는 날개달린 천신들이 화환을 들고 축하하고 있고 그 아래 교의 반형상주의(反形象主義, aniconism)로 부붓다는 직사각형 디딤판으로 표시되었다. 맨 아래 아버지와 일족들이 반얀 나무를 바치며 경배하고 있다. Sanchi Stupa, Sanchi, India​고타마 붓다가 깨달음을 얻은 후 처음으로 아버지 슈도나야(Śuddhodana) 왕이 다스리는 샤키아(Shakya) 왕국을 찾아갔을 때, 원로들은 자신들이 이전의 왕자보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존경을 표하지 않았다. 붓다는 기적을 일으켜 이들 머리 위 공중에 나타났다. 슈도나야 왕은 가장 먼저 고개를 숙이고 이제는 붓다에게 존경을 표해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존경을 표하였다. 그러자 왕조의 다른 구성원들도 고개를 숙이고 그 종교를 받아들였다. 카산타라 자타카 벽화, Wat Arun, Bangkok​갑자기, 비구름이 걷히고 한 방울의 비가 내렸다. 한 방울의 비는 추종자들이 이 비는 무엇입니까?라고 묻도록 이끌었다. 붓다는 이 비가 자신의 전생에 한 번 나타났다고 설명하고 나서, 이들에게 베산타라 왕자로서의 전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카산타라 자타카 벽화, Wat Arun, Bangkok​탄생과 젋은 시절​​​베산타라 자타카, 1920-1940년경 태국 라따나꼬신(Rattanakosin) 왕조 시대, 천에 그림, Walters Museum, Boltimore​베산타라는 시비(Śibis)의 왕 산자야(Sañjaya)의 아들로 수도 자투타라(Jatuttara)에서 태어났다. 어머니 푸사띠(Phusati)는 전통에 따르면 큰 공을 세운 공주였고 다음 붓다가 될 사람의 어머니가 되기를 바랐다. 죽은 후, 공주는 하늘에 올라 인드라(Indra, 제석천/帝釋天)의 신봉자가 되었다. 제석천과 푸사띠, 태국 회화에서 제석천의 천국은 종종 풍부한 열매를 맺는 나무들이 여기를 암시하는, 엄청난 부를 가진 성벽으로 묘사된다. Walters Museum, Boltimore​제석천은 그녀에게 소원을 청할 수 있는 다파벳 10개의 분(bo͞on, 혜택)을 주자, 그녀의 소원은 다음 생에 깨달음을 얻을 보살(菩薩, bodhisattva)의 어머니가 되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인간 세상으로 내려왔고, 왕의 궁정에서 태어나 후 산자야(Sañjaya) 왕과 결혼했다.카산타라 자타카 벽화, Wat Arun, Bangkok​임신 마지막 날, 여왕이 수도를 방문하고 싶어하자 왕은 그 소원을 들어주었다. 여왕은 여러 지역을 방문했고, 사람들은 여왕의 방문을 기뻐했다. 도시의 중심에 있는 바자(bazaar, 시장)에 머무는 동안 여왕은 긴급 분만으로 출산하게 되었는데, 그래서, 새로 태어난 왕자의 이름을 상인 지구에서 태어나다라는 뜻의 비스반타라(Viśvantara)로 지었고 나중에 베산타라(Vessantara)가 되었다. 눈을 뜨자마자, 어린 왕자는 어머니에게 가난한 사람들에게 줄 돈을 요구했다. Asian Civilizations Museum, Singapore같은 날, 암컷 코끼리가 새로 태어난 하얀 코끼리 새끼를 왕궁으로 데려왔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나누어 주는 베싼타라, Asian Civilizations Museum, Singapore​베산타라는 자신의 가진 것을 기꺼이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친절한 사람으로 자랐다. 부모는 이런 아들의 태도를 기뻐하며, 자신들의 보물로 왕자의 자선 활동을 지원했다. 베산타라는 마드리(Madri) 공주와 결혼해 왕자 잘리(Jali)와 공주 크리슈나지나(Krishnaajina)를 두었다. 부왕 산자야가 은퇴하자, 베산타라는 왕으로 즉위했다.카산타라 자타카 벽화, Wat Arun, Bangkok​​추방과 은둔자로써의 삶​​​베산타라는 가뭄에 직면한 이웃 나라 칼링가(Kalinga) 사신들에게 비를 몰고 온다는 마법의 흰 코끼리를 주자, 베산타라 왕국 사람들이 이를 비난하고 있다.​어느 날, 베산타라는 가뭄에 직면한 이웃 나라 칼링가(Kalinga) 사람들에게 비를 몰고 온다는 마법의 흰 코끼리를 나누어 주었다. 그러자 베산타라 왕국 사람들은 가뭄의 공포에 시달렸다. 그들은 부왕 산자야에게 왕국의 통치를 재개하고, 아들 베산타라를 추방하라고 설득했다. 베산타라는 흔쾌히 왕국을 아버지에게 넘겨주고는 왕국을 떠나 아내와 두 자녀를 데리고 리시(rishi, 은자)로서 숲에서 살기로 하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나누어 주었다. 숲으로 향하는 베산타라, Shwezigon Paya, Bagan, Myanmar왕국에서 추방되면서도 자신의 모든 것을 나눠주는 베산타라, Wat Kasattrathirat, Ayutthaya, Thai앞에는 브라흐마교의 수행자들이 마차를 요구하고, 뒤에는 브라흐민들이 마차를 나눠가지고 있다. ​베산타라의 충직한 신하 중 한 명이 밤카산(Vamka Mountain)에서 살 것을 제안하자, 이들은 마차를 타고 왕국을 떠났다. 가는 길에 브라흐마교의 수행자들이 마차를 요구하자 이를 나누어 주자, 네 명의 천신들이 마차를 끌기 위해 사슴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베산타라는 그 마차 마저 나눠어 주고 가족들은 걸어서 산으로 향했다. 베산타라는 천신들의 황금 마차 마저 내주고 가족들과 걸어서 산으로 향했다.​숲을 다파벳 지나면서 어린 왕자와 공주는 높은 가지에 야생 과일이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으나 너무 높아 부모들에 손에는 닿지 않았다. 그러자 기적적으로 모든 나무들이 이들을 위해 자신들의 가지를 구부렸다. 베산타라 자타카, 바르후트 스투파(Bharhut Stupa), BC 2세기경, 마우리야 왕조 시대(Mauryan Period), Satna, Madhya Pradesh, India​마태오 복음(2:13–23)에 나오는 에집트로의 피난(Flight into Egypt)은 신약 외경(外經, Apocrypha)에서 재구성되어 있는 이야기로 동방박사들의 방문 직후, 꿈에 한 천사가 요셉에게 나타나 마리아와 아기 예수와 함께 이집트로 피신하라 알려주는데, 이는 헤로데 왕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기 때문이었다. 베산타라 자타카, Sanchi Stupa​이 중 동방 그리스도교회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이야기 중 하나로, 7세기경의 위(僞) 마태오(Pseudo-Matthew)서 나오는 이야기에서 마리아와 요셉이 뜨거운 사막 열기에 지쳐 대추 야자 나무(일반 전승에서는 체리나무 과수원) 아래서 쉬고 있을 때, 마리아가 아이 가진 것을 언급하며 남편에게 체리를 따 달라하자, 요셉은 화를 내며, 아이 아빠에게 직접 따 달라하라고 말한다. 그러자 태중에 아기 예수가 체리 나무에게 가지를 낮추라"명하자, 즉시 체리 나무는 가지를 땅에 닿을 듯이 낮춘다. 이 기적에 놀란 요셉은 용서를 빈다. 체리-트리 캐롤(The Cherry-Tree Carol)은 15세기 성체 축일(Feast of Corpus Christi)...​그리고 나서 그 가족들은 인근의 쎄타(Ceta) 왕국에 도착했다. 쎄타의 왕은 그들의 도착을 알렸고 왕자를 맞이하기 위해 달려갔다. 왕은 이들의 이야기에 감동을 받고는 자신의 왕좌를 제공했지만 왕자는 거절했다. 또한 자신과 가족이 궁에 머무는 것 조차 거절했다. 그들은 밤카(Vamka)라 불리는 산에서 금욕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쎄타의 왕은 그 누구도 그 가족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사냥꾼에게 산의 입구를 순찰하라 명했다. 늙은 브라흐민 주자카는 젋은 아내가 길어올 물을 기다리고, 아미타다는 마을 여자들에게 옷이 찢어진 채 매를 맞고 있다. 베산타라 자타카, 1920-1940년경 태국 라따나꼬신(Rattanakosin) 왕조 시대, 천에 그림, Walters Museum, Boltimore​한편 거지로 살던 탐욕스러운 늙은 브라흐만교의 수행자 주자카(Jujaka)에게는 아주 젊은 아내 아미타다(Amittada)가 있었는데, 매우 아름답고 열심히 일하였다. 가뭄 때 아미타다는 늙은 남편을 위해 정기적으로 우물에서 물을 길어 왔다. 마을의 다른 여자들의 남편들은 그녀를 좋은 근면한 아내의 본보기로 들고 있었다. 어느 날 질투심에 휩싸인 마을 여자들이 모두 우물가에 모여들어 수행자의 젊은 아내를 때려 옷을 찢었다. ​그날 이후로 아미타다는 더 이상 우물가에 가기를 거부하며, 주자카에게 시중을 다파벳 들 몇명의 종들을 구해오라고 재촉했다. 이제 더 이상 그녀는 남편에게 아무런 평화로움도 주지 않았다. 베산타라를 찾으려 숲 속을 헤매던 주다카는 개들에 의해 나무 위로 쫓기게 된다. 사냥꾼을 속여 베산타라의 추방이 취소되었다고 속인다. Walters Museum, Boltimore​주자카는 밤카산 입구를 지키고 있는 사냥꾼을 만나 베산타라의 추방이 취소되었다고 속였다. 또한 현자 아깔라(Accala)를 만나서도 속였다. 마침내 브라흐민 주자카는 아내가 없는 틈을 타, 베산타라 왕자를 찾아 숲으로 가, 두 아이를 달라 하자 베산타라는 주겠다 한다. 개에쫒기는 주다카와 사냥꾼, Walters Museum, Boltimore현자 아깔라(Accala)와 주타카베산타라는 주자카의 부탁을 수락하며, 손에 물을 붓고 있는데, 이는 대가없이 순수하게 주는 것 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주다카가 아이들을 묶고 끌고 가며 작대기로 때리고 있다. Walters Museum, Boltimore​그러자 왕자 잘리(Jali)와 공주 크리슈나지나(Krishnaajina)는 연못으로 도망가 숨었다. 베산타라는 아이들을 찾아 자신이 최고 목표인 붓다의 경지에 이룰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냐고 물었다. 이에 아이들은 동의하고 주자카의 종이 되었다. 베산타라는 주자카에게 아이들을 할아버지에게 데려다 주면, 왕은 사랑하는 손자들을 돌려준 것에 대해 상을 줄 것이라 말했다. 그러자 주자카는 왕이 대신 자신을 처형할 것이라고 말한다. 베산타라 자타카 벽화, Thai​주자카는 넝쿨로 아이들을 묶고 소처럼 끌고 다녔다. 이 늙은 브라흐민이 마구 꾸짖고 작대기로 아이들을 때리자, 아이들은 아버지를 찾아가 도와달라고 애원했다. 베산타라는 이 모습을 보고 견디지 못해 자신의 오두막에 보관하고 있던 무기에 손을 뻗었다. 그러나 이내 그는 모든 분노를 극복하고 아이들을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숲에서 음식을 구하기 위해 아내 마드리가 자리를 비우고 있고 사자, 호랑이, 표범 형태의 신성한 존재들이 나타나 그녀의 길을 막는다. 호랑이와 표범이 현실적으로 묘사되는 반면, 태국 예술에서 사자는 대개 양식화된 신화적인 짐승으로 묘사된다. Walters Museum, Boltimore사자는 아마 히마판의 창조물 중 가장 많은 종류를 지닌 창조물로 순수하게 사자를 표현한 것과 혼합동물로...​아내 마드리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호랑이들에 의해 막혀, 이같은 이들이 일어난 것에 대해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아이들이 없어진 사실을 알고, 밤새 찾아 헤매다 마침내 남편 앞에 쓰러졌다. 베산타라는 그녀가 죽었다고 생각해 아내의 죽음을 애통해 했다. ​그는 아드리의 머리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아직도 숨을 쉬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물을 마시게 하자 이내 깨어났다. 마드리는 일어나 독신 다파벳 서역을 맹세하기 알맞은 거리를 유지했다. 그러자 베산타라는 아내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했다. 마드리는 모든 것을 알게 된 후, 남편의 위대함을 칭찬했다.녹색의 제석천(帝釋天, Śakra)이 마드디를 달라하자, 이를 수락하며 손에 물을 붓고 있는데, 이는 대가없이 순수하게 주는 것 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중국식 건축은 19세기 중후반 태국 회화에서 점차 보편화된 양식적 경향을 보인다. 1920-1940년경 태국 라따나꼬신(Rattanakosin) 왕조 시대, 천에 그림, Walters Museum, Boltimore​베산타라가 아내까지 내줄 것을 두려워한 제석천(帝釋天, Śakra)이 브라흐민으로 변신하여, 마드리를 달라 하자 베산트라는 선뜻 자신의 아내 마저 내주었다. 그러자 그의 자비와 관용의 완벽한 행위에 감동한 제석천은 마드리를 베산타라에게 돌려주었다. Walters Museum, Boltimore​​베산타라는 두 아이를 달라고 청하는 주자카와 브라흐민으로 변신한 제석천이 나타나 아내를 달라 청하자 기꺼이 응하며 약속을 확답하는 의미로 손에 물을 붓는데 이는 대가없이 순수하게 주는 것 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오래된 베다(Veda) 관습에 따라 모든 자선행위는 성수를 뿌리는 의식에 의해서 비준되고 성화되어 왔다. 예를 들어 토지를 기증하거나 사원에 기부하는 경우 물을 땅에 쏟는 관습이 있었다 한다. ​인도 언어학의 창시자인 영국의 헨리 토마스 콜브루크(Henry Thomas Colebrooke)는 인도의 종교와 철학에 대한 연구에서 땅을 기부할 때 기부자는 기부를 받는 자와 마주앉아 기부하는 땅 위에 물을 뿌리고 기부를 받는 자의 손 위에 물을 부음으로써 기증에 대한 공식적인 선언이 이루어지는 관습을 소개하고 있다. 물을 땅에 뿌리는 의식의 의미는 보시(布施)를 배푸는 자가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지만 보시 행위는 개인의 구원을 위한 대가가 된다.​​이사악의 결박(The Binding of Isaac. 히브리어:ֲקֵידַת יִצְחַק. 아케다 이사악(Aqedat Yitzhaq) 또는 히브리어로 간단하게 결박, ָעֲקֵידָה. 하-아케다(Ha-Aqedah)라고도 하는데, 이는 히브리어 성경의 창세기 22에 나오는 하느님께서 아브라함(Abraham)에게 외아들 이사악(Isaac)을 희생물로 바치라 요구하자 이에 순응하여 이사악을 하느님께 바치기 위해 제단 위에 묶어놓은(ָעֲקֵידָה. 하-아케다(Ha-Aqedah)"사건을 말한다. 이사악의 결박(The Binding of Isaac. 히브리어:ֲקֵידַת יִצְחַק. 아케다 이사악(...​시비로의 귀환​​​두 명의 천신들이 주타카가 자는 동안 두 아이를 돌보고 있다. Walters Art Museum, Boltimore​두 명의 천신들이 어린 왕자와 공주에게 동정심을 느끼고는 부모로 변신하여 아이들을 양육하였다. 그리고 주자카가는 길을 잘못된 방향으로 틀어서 왕국의 궁궐 문을 지나게 만들었다. 신성한 존재들이 주자카를 이끌고 산자야 왕의 궁전으로 간다. 왕 앞에 사람들과 같이 앉아있는 아이들의 값을 치룬 후, 다파벳 아이들은 왕족의 모습으로 할아버지의 곁에 앉아있다. Walters Museum, Boltimore​왕은 익숙한 아이들의 얼굴을 보고 근위병에게 그들을 데려오라 명했다. 왕은 이내 자신의 손자들을 알아보고, 남의 종이된 아이들의 대가를 치르겠다고 한다. 그러나 손녀의 값이 손자보다 가격이 높았는데, 이는 아버지 베산타라가 아무도 어린 딸을 사지 않길 바랬기 때문이었다. 사실, 이 어린 왕자와 공주의 가격은 너무 높아 오직 산자야 왕만이 살 수 있었다.​주자카는 엄청난 부자가 되었다. 부자로서의 첫 번째 식사에서 너무 많이 먹고 소화기 계통에 문제가 생겨 접시 위에 쓰러졌다. 산자야 왕은 그의 재산을 압수하기 위해 부하들을 보내 가족들을 찾았지만, 아내와 가족 모두는 반역에 대한 처벌을 두려워해 도망가 버렸다. 산자야는 아들과 며느리를 만나기 위해 거대한 행렬을 준비했다. 시비 왕국으로의 귀환, 1920-1940년경 태국 라따나꼬신(Rattanakosin) 왕조 시대, 천에 그림, Walters Museum, Boltimore​​베산타라가 비를 내리는 마법의 코끼리를 나눠 주었던 칼링가 왕국이 다시 번창하자 마법의 하얀 코끼리를 돌려주었는데, 이는 시비 사람들의 분노를 누그러뜨렸다. 잘리 왕자는 군대와 사름들을 이끌고 집으로 찾아가 가족들은 재회하게 되었다. 가장 행복한 순간 이후, 그들 가족 여섯 명 모두가 쓰려지자, 이들을 되살리기 위해 하늘에서 붉은 비가 쏟아져 내렸다. 이 비는 젖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흠뻑 내리고, 젖고 싶지않는 사람들에게는 내리지 않았다. 베산타카 자타카, Vihantara No. 17 현관, Ajanta Cave, Maharashtra, India​베산타라는 다시 앙국으로 돌아와 왕위에 즉위했다. 제석천(帝釋天)이 왕국에 보석 비를 내려 축복하자, 베산타라는 사람들이 그 보석들을 스스로 보관하도록 하고, 남은 보석들은 자선을 위해 사용했던 왕국의 금고에 보관하였는데, 보물들은 나중에도 결코 바닥나지 않았다. ​​붓다는 각자의 사람들은 붓다 시대에 붓다들을 둘러 싸고 있는 보살들로 거듭난다 하였다. 베산타라의 부모는 고타마 붓다의 부모로, 마드리는 고타마의 아내 야소다라(耶輸陀羅, Yaśodharā)로 환생했으며, 왕자 잘리는 고타마의 아들, 라훌라(Rahula)로, 공주 크리슈나지나는 비구니(bhikkhuni) 우팔라반나(Upalavanna)로 환생하였다. ​베산타라에게 밤카산에서 살 것을 제안한 충실한 부하는 코타마의 사촌 동생이자 가장 충실한 제자인 아난다(Ananda)가 되었으며, 늙은 수행자 주자카는 이제 붓다의 숙적인 데바다타(Devadatta)가 되으며, 흰 코끼리는 마하가섭(摩訶迦葉, 산스크리트어: Mahākāśyapa)로 다시 태어났다. Wat Sri Suphan, Chiang Mai​​문화와 예술​​베산타라 자타카는 태국 남부에서는 텟 마하챗(Thet Mahachat, เทศน์มหาชาติ)이라 하며, 마하 자티(Maha Jati, 위대한 탄생) 축제 동안 사원에서 기념되며, 태국 북동부 20개주로 구성된 이산(Isan)에서는 분 파웻(Bun 다파벳 Phawet)/분프라웨스(Bun Phra Wes), 분 두완 시이(Bun Duan Sii), 또는 텟 파웻(Thet Phawet)로, 라오스에서는 바운 파벳(Bun Pha Vet)으로 기념되며, 또한 캄보디아, 미얀마와 스리랑카에서 중요한 기념 행사로 여겨진다.숲으로 향하는 베산타라, Shwezigon Paya, Bagan, Myanmar​스리랑카에서는 죽은 친척의 시신을 보고 베산타라 카야(Vessantara Kāvya)에 나오는 한탄의 구절, 특히 마드리가 자녀의 죽음을 애도하는 구절들을 낭송한다. 이 구절들은 시인에 의해 근세 초기 스리랑카에서 작곡된 것으로 버려짐과 정서적 황폐함을 강조한다. 베산타라 자타카의 강조점은 경전의 내용과는 다르지만, 아낌없는 나눔과 베품이라는 보시(布施)라는 주제는 일반 사람들 사이에서 매우 인기가 있었다. ​텟 마하챗은 시골과 도시 모두에서 매우 인기가 있으며, 종종 춤과 연극 공연, 그리고 마을을 지나는 축제 퍼레이드와 행렬이 있다. 축제 동안 승려들은 의식과 문화 공연이 수반되는 베산타라 자타카 전체 본문에 대한 설교를 한다. ​텟 마하챗 또는 분 파 벳(Boun Pha Vet) 행사에서의 중심적 역할 때문에, 베산타라 자타카는 동남아 많은 지역에서 전통 민속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데, 장면들 중 일부, 특히 주자카와 젊은 아내 아미타라는 이 어울리지 않는 커플은 축제 기간 동안 대중에게 매력적이다. ​베산타라 자타카 장면들은 동남아시아 곳곳의 불교 사원 벽에 묘사되어 있으며. 또한 캄보디아 앙코르왓(Angkor Wat, Cambodia)의 벽화들에도 새겨져 있고, 이캇(ikat) 비단 천에도 고대 문양들로 묘사되어 있다,The Vessantara Jataka, Svay Sareth, NGV International, Cambodia​​왕권의 합법화​​​베산타라 기념물(Vessantara Monument), Pathum Wapi, Song Dao, Sakon Nakhon, Thailand​태국에서 지난 7세기 동안, 베산타라 자타카는 마하 자티(Maha Jati, 위대한 탄생) 축제를 통해 태국 왕권을 합법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베산타라 왕자의 관대함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축제에서 공덕을 쌓는 일과 바라밀다(波羅蜜多, paramis, 열반(涅槃)에 이르고자 하는 보살(菩薩) 수행)가 크게 강조되었다. 양초 베산타라 조각 퍼레이드, Thai​수백 년 간 지속된 버마의 지배 하에서도 타이민족의 버마에 대한 저항운동은 지속되었고 1767년 버마 침공 이후에는 이 저항 운동이 더욱 불타올랐는데 이 저항 운동을 선두에서 이끈 지도자가 바로 화교 출신의 탁신(Takshin, 鄭昭) 장군이었다. ​1767년 12월 28일 탁신은 왕위에 오르며 자신을 크렁 톤부리 왕(Krung Thonburi, 鄭昭) 왕이라 선포함으로 톤부리 왕조가 시작되었다. 톤부리 왕국을 건설한 탁신 왕은 수없이 치러온 전쟁에 대한 압박 때문이었을까? 정신 이상에 빠져 왕국은 혼란 빠진다. ​그리고 반란이 일어나게 되는데, 1782년 4월 다파벳 6일 반란을 진압하던 차끄리 장군은 회군하여 탁신 왕조를 무너뜨리고 왕위에 즉위하는데, 이가 바로 태국의 현 왕조인 치끄리 왕조(Ratcha Chakri,1782-현재)를 연 라마 1세이다. 탁신이 재위 15년 만에 석연치 않은 이유로 처형을 당하자 그 뒤를 이어 새로운 왕조를 세우고 왕위에 오르게 된다. 선왕의 처형에 직간접적으로 연루 되어있던 관계로 혼란해진 민심의 습이 시급하였다. 유타야 시대 말기와 톤부리 시대의 혼란기를 직접겪은 라마 1세는 불교를 국가 안정과 번영의 한 기본적인 요인으로 정하고 즉위 후 가장 먼저 불교 개혁에 착수한다. 숲으로 들어가는 베산타라 가족, Walters Museum, Boltimore​이는 종래의 역사 해석의 관점이었던 아유타야 전통의 복원이 아니라 아유타야 전통의 개혁이라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노력의 핵심으로 그는 인도 대서사시 “라마야나(Ramayana)”이야기의 태국어 버전인 “라마끼엔(Ramakien)” 새로운 판본을 구상한다.호 프라 몬티안 탐(Ho Phra Monthian Tham)은 사방이 온통 회랑으로 둘러쌓여 있는데, 모두 7개의 입구...​또한 베산타라는 자신의 공덕과 희생으로 왕이 된 모범적인 왕자였기 때문에, 축제는 차크리(Chakri) 왕조가 그것을 합법화하는 중요한 방법이었다. 그러나 라마 4세의 개혁 기간 동안, 태국 불교가 현대화되면서, 이 축제는 진정한 불교를 반영하지 못한다고 치부되었다. 베산타라는 가뭄에 직면한 이웃 나라 칼링가(Kalinga) 사신들에게 비를 몰고 온다는 마법의 흰 코끼리를 주자, 베산타라 왕국 사람들이 이를 비난하고 있다. Walters Museum, Boltimore​이후로 베산타라의 인기는 크게 감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조의 입지를 확고히 하고 사회의 통합을 만들기 위해 태국 왕정과 정부에 의한 베산타라 왕자의 공덕과 희생 강조는 적어도 20세기 후반까지 계속되었다. Vessantara Jataka, Lonad caves, Lonad village, Amane, Maharashtra, India ​브라흐만의 묘사​​​늙은 브라흐민 주자카가 베산타라에게 두 아이를 받은 후 줄로 묶고 때리면서 끌고 가고 있다. Walters Museum, Boltimore​브라흐만교의 늙은 수행자 주자카는 베산타라 이야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음탕하고 잔인하며 겁쟁이로 묘사되는 그의 이름 바로 그 자체가 노쇠함을 암시한다. 브라흐민이 숲으로 향하는 베산타라에게 가족이 탄 마차를 달라한다. Walters Museum, Boltimore​불교의 성장기 때, 자이나교와 불교는 브라흐만교의 사회적 계층화를 반대했고, 그들의 평등주의는 중기 갠지스 분지의 도시들에서 팽배했는데, 엄격한 카스트제를 따르도록 강요하는 브라흐만교인보다 자이나교와 불교도들은 모두가 평등하게 대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이러한 인식의 전통으로 주카카라는 브라흐만교의 수행자에 묘사는 불교 대중 문학에서 전형적인 브라흐만 수행자들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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